
1. 소개 - 기대가 컸던 만큼 더 크게 남은 아쉬움
간만에 극장에서 볼 만한 한국 영화가 개봉했다는 생각에 영화 <어쩔수가 없다>를 보고 왔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겼고, 여기에 이병헌, 손예진이라는 이름까지 더해지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편입니다. 줄거리, 장르, 결말 해석 같은 내용을 미리 알고 보면 영화가 주는 첫인상이 흐려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목과 주요 배우 정도만 알고 관람했습니다.
다만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 걸렸던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러닝타임이었습니다. 139분, 약 2시간 19분이라는 길이는 결코 짧지 않습니다. 물론 긴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지루한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끝까지 끌고 갈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이 영화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 스타일도 좋아하고, 이병헌과 손예진 역시 믿고 보는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작품은 개인적으로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을 주기에는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특히 영화 초반부가 생각보다 느슨하게 흘러갑니다. 저는 영화를 볼 때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흐름을 좋아하는데, <어쩔수가 없다>는 초반부터 관객을 강하게 붙잡기보다는 천천히 상황을 쌓아가는 쪽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제게는 조금 길게 느껴졌다는 점입니다.
2. 결말 해석 - ‘어쩔 수 없음’은 변명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영화 제목인 <어쩔수가 없다>는 결말을 보고 나면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 말이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삶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고, 현실은 점점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물은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태에 놓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단순한 마무리라기보다, 한 사람이 끝까지 몰린 뒤 내뱉는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영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이 직접 판단하게 만듭니다.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고, 결국 본인이 선택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결말 자체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결말 이후에 남는 찝찝함이 큽니다. “저 사람은 정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을까?”, “그 선택은 생존이었을까, 욕망이었을까?”,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어디까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 계속 따라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깔끔하게 정리되는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불편한 감정을 남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깊은 여운으로 남을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답답함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3. 훌륭한 배우들, 그러나 느슨했던 초반 흐름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분명 좋았습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은 말할 것도 없고, 함께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대부분 주연급 존재감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연기만 놓고 보면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었습니다. 감정 표현도 안정적이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영화 전체가 무조건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이 바로 편집과 호흡에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초반부는 인물과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씁니다. 물론 결말의 무게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반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기 전에 먼저 지치게 됩니다. 저도 중간중간 시계를 보게 될 만큼 초반부가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뒤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분명 있습니다. 인물의 심리가 흔들리고, 관계가 어긋나고, 상황이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과정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차가운 긴장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그 지점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조금만 더 압축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러닝타임을 줄이고 초반부를 과감하게 덜어냈다면 결말의 충격이나 인물의 감정선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느린 호흡 자체를 작품의 미학으로 받아들이는 관객도 많을 듯합니다. 장르와 시나리오의 결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런 불친절하고 느린 전개를 매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기준에서는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영화가 초반부터 팽팽하게 관객을 끌고 가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어쩔수가 없다>의 전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다가왔습니다.
4. 결론 - 해석할 거리는 많지만, 만족감은 갈릴 영화
<어쩔수가 없다>는 결말 해석을 이야기하기 좋은 영화입니다. 제목이 가진 의미부터 주인공의 선택, 마지막 장면이 남기는 감정까지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여지가 많습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현실에 짓눌린 인간의 비극으로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자기 욕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인물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이해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 자체는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고, 결말 이후 생각할 거리도 있었지만, 초반부의 느슨한 전개와 긴 러닝타임이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느린 호흡 속에서 인물 심리와 상징을 해석하는 재미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을 작품입니다. 반대로 빠른 전개, 강한 긴장감, 명확한 결말을 기대한다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어쩔수가 없다>는 완전히 별로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강하게 남는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결말을 해석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그 결말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조금 더 날카로웠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해석할 여지는 많지만, 보는 내내 몰입감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던 영화.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처럼, 보고 난 뒤 제 감상도 어쩔 수 없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